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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리산 둘레길 (1/2)

 

 

[1코스:주천~운봉]

 걷기, 도보여행, 하이킹(hiking) 등 언제부터인가 '길'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게 되는 변화인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이런 길들이 예전과 달리 느껴진다. 산티아고 가는길,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청송의 외씨 버선길, 강원도 바우길, 합천의 소리길까지 관심을 갖고 있으니 곳곳에 도보꾼들을 위한 길들이 선을 보인다.

 

 그중에 몇달여 머리속에 맴돌던 지리산 둘레길. 2012년 8월 15일. 때마침 맞이한 여름휴가를 택해 둘레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코스는 어디로 해야 할까?(20여 코스가 있다), 첫 시작을 어디서 할 것인가? 이동은 어떻게 해야 하나? 숙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준비물은 어떤 것들일까? 등등 시작도 하기전에 걱정거리 챙길거리등이 먼저 다가왔다. 걱정도 팔자. 일단 실행부터!

 

 이동경로와 함께 사흘간의 기간을 고려할 때 전체 구간중 어느곳을 다녀올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 했다. 이것저것 함께 따져 보았지만 1코스부터 시작하는 것, 기간동안 4개 코스를 밟는 것 그리고 방향도 역방향이 아닌 순방향으로 하기로 하고 주천에서 가장 가까운 남원역으로 이동하여 시작하였다.

 

 때는 한여름. 뙤약볕속에서 14.3Km, 6시간여 소요된다는 1코스. 오후 2시경이니 8시경에 1코스가 끝난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 한 10분여 도로를 따라 산길에 접어들었다. 야트막한 오르막이지만 첫 걸음인지라 익숙하지 않은 다리 움직임과 함께 한여름의 후끈한 날씨가 더해져 시작부터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한참을 숨을 헐떡이며 오르니 등성이가 나왔고 이 길을 걷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의자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장마 시즌이어서인지 인적은 뜸했고, 오로지 혼자서 걷는 산길은 계속 이어졌다.

 

 내송마을에서 솔정지 그리고 구룡치를 지나 회덕마을까지는 그야말로 꼬불꼬불 작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옛길이었다. 비가 조금씩 내비치더니 이내 바람과 함께 몰아쳤지만 관성이 붙은 발걸음을 세우지는 못하였다. 산속 길을 끝내고 다가온 회덕마을과 노치마을 그리고 거기서 맞이한 쉼터에서 잠시 어깨를 쉬게 하였다.  이후 운봉으로 가는 길은 제방길과 논길로 이뤄져 있어 산길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 논길은 발바닥에 느껴지는 푹신함과 함께 논에 가득한 벼들이 물결치는 풍경을 더불어 감상하며 걸을 수 있고 저수지를 끼고 도는 야트막한 제방길(산길)은 또 그것대로 심심치 않게 해 주었다.  드디어 7시경 넘어 되니 운봉읍내에 들어섰다. 고향 읍내같은 느낌을 주는 곳. 첫날 예약없이 왔던지라 숙소를 찾아나섰다. 민박집은 두곳중 한 곳은 이미 찼고 나머지 한곳을 찾아가는 중에 방을 잡지 못하면 어찌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딪쳐 보면서 해결해 나가면 될 일! (현지 사정에 맞춰 구하고 그 형편에 따라가는 것. 그것 또한 마다할 일은 아니라는 것)

 

민박집에서 마련해주신 저녁을 맛있게 먹고, 하루를 마감했다. '운봉초등학교에서 본 400년 수령의 큰 느티나무를 보니 예전 시골 고향 마을의 초입에 있던 그 느티나무가 떠올랐다. 지금은 베어 없어졌지만(아직도 그걸 왜 베어 버렸는지를 난 모른다.) 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 생각 정리하고 지금까지 걸어온길을 뒤돌아 볼 수 있고 또한 애써 만든 고독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기에 더욱 더 값지게 보내야겠다는 생각'... 생각은 얼마 이어지지 않아 깊은 잠에 난 빠져들었다.  

 

 

[2코스]

가랑비가 내리는 아침, 민박집에서 마련해 주신 아침(꼭 집에서 먹는 밥처럼 해 주신 아주머니의 정성이 더해져 그 맛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을 맛있게 먹고 인월을 향해 출발하였다. 여전히 2코스의 길에서도 걷는 이들이 드물었다. 출발하고 한동안은 제방길을 주욱 따라 걸었다. 아침녘 비온뒤 제방길 위에 나무가지들에 걸쳐있는 거미줄엔 물기가 맺혀있고 땅은 적당히 물기를 머금어 걷기에 또한 딱이었다.

 

들판엔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곧 황금 들녘으로 바뀔 것이다. 운봉에서 인월구간은 운봉들녘을 따라 마을과 마을을 거쳐 가는 평지길이 대부분이었다. 북천, 신기, 비전 마을등 지나는 마을 어귀마다 느티나무와 함께 정자가 어김없이 있어 동네 들어설 때부터 나름의 운치를 느끼게 해 주었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에서부터 가끔씩 동네 사람들끼리 가끔 모여 정을 나누는 쉼터의 역할뿐만 아니라 동네 들어서는 낯선 손님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도 느티나무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코스]

 인월에서 금계는 19.3Km 정도로서 한 8시간여 소요된다. 산간 임도, 논길등으로 이뤄진 배너미재를 넘어 오는 길에 다랭이 논들도 함께 즐기며 오다보니 어느새 장항마을 앞의 소나무 당산에서 짐을 내려놓게 된다. 어깨가 계속 아파 짐을 좀 더 가볍게 해야 겠다 생각하고 장항쉼터에서 가까운 우체국을 물어보니 마을로 내려가면 있다고 한다. '남원 산내 우체국'에 들러 짐의 절반은 택배로 집으로 보냈다. 훨씬 더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다시금 출발.

 

코스에서 벗어나 우체국을 들렀기에 그 길을 다시금 찾아가야 했다. 분명히 해당 코스가 나오리라 생각하며 방향으로 둑길을 계속 걷는 중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옷을 꺼내들어 입고서 길을 물어보려 해도 주변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그저 왔던 길 반대편으로 무작정 다시 되짚어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코스 이탈이라는 뜻하지 않은 길인지라 계속 헤매면서 시간을 허비하게 될까 마음은 급했다. 그러던 중에 눈에 뜨인 안내소. 3코스 가는 길은 창원마을을 지나 금계까지인데 갈 길은 멀고 일단 그 중간인 등구재까지 가 보고 거기서 묵을 지 아니면 더 갈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안내소에서 일러준대로 오른편 산쪽 등성이를 향해 계속 가면 등구재를 만나게 된다니 그쪽으로 향해 나아갔지만 점심도 걸렀고 비는 쏟아지고 다리는 계속 무거워져 오니 이거야 말로 난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속이지만 멈출 수가 없기에 계속 등구재를 향해 가기로 했다. 물론 금계까지 마칠 수 있을지는 잘 몰랐고 어쨋든 등구재만 지나면 그 이후는 수월하니 문제없다 생각하며.

 

 

지금 지나고 보니 참 기억에 남는 시간들이었다. 체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내내 비를 맞으며 걸었던 길. 가면 길에 혹여나 잘 못 들어섰나 싶어(가도 가도 끝이 없기에) 밭일하시는 할머니에게 여쭤 보니 계속 주욱 올라가라고 하신다. (처음엔 등구재를 여쭤보니 잘 모르신다고 하시다가 아! 등귓째...라고 하시며 알려주셨다. ^.^). 그 후에도 길은 계속 되었고 스멀스멀 긴가민가 하며 가니 더욱더 힘이 들었다. 그냥 털썩 주저앉아 버릴 듯 하면서도 번갈아 내딪는 발걸음이 신기할 정도였으니...

 

 이윽고 등구재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쪽 산등성이에 걸쳐있는 구름이 머문곳이 등구재였다. 저 곳만 가면 된다 생각하니 걸음걸음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왔다. 등구재가 보이는 그곳에서부터도 한시간여 더 걸렸나 보다.

 

 

 꾸역꾸역 등구재 정상 어귀에 다다르고, 주변을 둘러보니 두 곳의 민박집이 눈에 뜨였다. 그중 황토민박집에 들어섰다. 하루종일 헤매다 저녁 해거름에 쓰러질 듯해서야 집에 돌아온 느낌. 도착하자 마자 비에 홀딱 젖은 옺가지를 우선 빨고서야 등구재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랭이 논들이 아래로 층층이 꼬불꼬불 경계를 지며 있었고 마주보는 저 멀리는 지리산 봉우리들이 겹쳐있는 풍경들.

 

 저녁을 먹으면서 민박집에 마실 나오신 동네분들과 함께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다. 윗집에 계신 분은 부산에서 주중에 일하다 주말에 이곳 자기가 직접 지은 집에 오신다고 하셨다. 이곳 자랑과 함께 자기집도 내일 아침 구경해 보라고 하실 정도로 직접 지으신 집에 대해 애착이 커신 듯 했다. 황토방 주인장 내외와 그 따님들의 사는 이야기, 동네 작목반 이야기 등등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밤은 깊어져 갔다. 9월경에 다랭이 논의 벼들이 익어가면 그 풍경은 말로 표현 못한다는 또 다른 동네 아저씨의 말이 귀에 꽂혔다. (꼭 한달 뒤에 또 방문하게 된 이유가 거기 있기도 했다)

 

하루 내내 묵언수행하듯이 길, 주변 나무, 바람 그리고 풍경들과 소리없는 대화를 나누며 보내는 시간도 값졌지만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없다 싶었다.

 

"여행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을 보는 것이다. 풍경도 풍경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