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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리산 둘레길(2/2)

 

 

 

[4코스]

금계까지 마무리하고 거기서 동강까지 마지막 4코스를 시작하는 새벽녘에 크게 쉼호흡하며 내려다본  안개 자욱한 등구재 아래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깨끗함 그 자체였다. 저멀리 지리산 봉우리를 마주하며 앉은 이쪽편 다랑이 논들의 행렬과 봉우리 능선 구비구비마다 내려앉은 안개가 어우러져 지리산그 청정한 기운을 뿜으며 아침을 열고 있었다.

 

 

 

 

표고전과 각종 산나물로 차림한 이곳 산장(황토방)의 아침 감사히 먹고 출발하니 이내 등구재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거북등 타고 넘던 고갯길, 등구재. '거북등을 닮아 이름 붙여진 등구재. 서쪽 지리산 만복대에 노을이 깔릴 때, 동쪽 법화산 마루엔 달이 떠올라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고갟길이다. 경남 창원마을과 전북 상황마을의 경계가 되고, 인월장 보러 가던 길, 새색시가 꽃가마 타고 넘던 길이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이가 드물지만 되살아난 고갯길이 마을과 마을, 그리고 사람을 이어줄 것이다.' 

아침 이슬이 풀들 사이사이 맺혀 있는 그곳을 지나니 곧 이어 콘크리트 임도로 이뤄진 골짜기 길을 한참을 가게된다. 이후 맞이하게 되는 창원마을 그리고 또 능선 넘는 길에 만난 하늘 길.

 

 

 

 

이쪽에서 볼때 저너머에 다가올 풍경이 사뭇 궁금해지는 그런 길이다. 물론 길 너머는 또 논길로 이어져 기대했던 풍경과는 거리가 멀지만 곧 이게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드니 그 나름 값어치는 있어 보였다.

 

점심때 쯤 지나니 금계마을이었다. 지리산 계곡을 앞에 둔 마을이었다. 안내소에 들러 어제부터 말썽이던 핸드폰에 대한 수리처를 물어보니 남원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거기서 왔을 뿐만 아니라 아직 동강까지 계획했던 여정이 남아있기에 그대로 동강을 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첫머리에서부터 이정표를 보지 않고 지나쳤고 또 다른 이정표를 둘레길 알림판으로 알고서 산속길을 3시간여 헤매다 다시 금계마을로 다시 돌아나와야 했다. 처음부터 잘 못 들어선 곳임에도 불구하고 갈림길에서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왔다갔다 하며 헤매었지만 결국은 길이 끊기고 말았다.

 

 

여름 뙤약볕아래 3시간여 헤매고(점심도 걸렀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통에 체력은 그야말로 바닥인 상태였다. 다시 그 자리(금계 안내소 맞은편)에 오니 지리산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고 마을은 온통 여기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로 뒤덮여 있었다. 산과 물 그리고 이곳의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즐겁고 감사했던 마음이 가득했건만. 수천년 흘러온 물줄기를 멈춰 무얼하겠다는 건지 또 그것은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동물들, 심지어는 나무,풀 등이 진정 원하는 것인지. 분명 아닐 것이다. 분노스런 감정이 나도 모르게 일어났다. 여기까지....  이차저차 그 목적을 밝히지만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게 원칙이고 정답이다. 왜 그렇게 뭘 짖지 못해서 안달인지, 왜 또 그렇게 투명하지 못한 것인지(보통 이런 류의 일들을 보면 내건 목적과 속내는 따로인 경우가 태반아닐까 한다.)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 제발 그냥 그대로 두어라. 마을 사람들의 단합된 힘과 그들을 응원하는 힘들이 모여 조상대대로 살아온 이땅에서 그대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지칠대로 지쳐 여기서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하자고 하는 외침과 달리 발은 또다시 잘 못 들어선 그곳으로 다시와서 동강 가는 길을 찾아 따라서 걷게된다. 금계에서 동강까지 11Km 정도. 3시간여 길을 잘 못 들지 않았다면 다른 곳처럼 어렵지 않게 소화가 될 길이었지만, 지칠대로 지친 상황에서의 11Km를 다시금 시작한다는 것은 한발 한발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

 

모전 마을까지 계속 이어진 산등성이를 따라 걷는 길은 그야말로 끝이 없게 느껴졌다. 간혹가다 지나는 사람외에는그저 혼자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걸어가는 길...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게 당연했다. 꾸역꾸역 걸어 마침내 산길을 벗어나 도착한 마을 모전 마을. 여기에서 동강까지는 그야말로 지척이겠거니 생각했고, 속으로 '이제 다 왔구나' 하며 환호성을 지르며 마을에 들어섰다.

 

요기와 함께 잠시 쉬어가리라 했던 모전마을에서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버스든 뭐든 나오면 차를 타리라 생각하며 강따라 난 아스팔트 길을 계속 걸어갔다. 달궈진 아스팔트길에서 뿜어오는 열기와 끝도 없는 길... 이길이 또 맞는 길인지 하는 의심이 들대로 들었지만 달리 수가 없으니 지칠대로 지쳐가는 대로 그저 아무생각없이 걷는 수 밖에 없었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가자 콘크리트 산길... 이때부터 조금만 조금만하며 갔다. 산길인지라 곧 해가 질 터인데 하며 서둘렀지만 쉽사리 동강은 나타나 주질 않았다. 꼬불꼬불 그렇게 몇개씩의 구비를 돌고도는 그 길은 힘들게도 했지만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면 그 순간에도 그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콘크리트라는 것만 빼면 그야말로 꼬불꼬불 논밭들과 어우러지며 이어진 길.

 

 

마침내 마지막 고비처럼 느껴지던 등성이에서 보이는 저 마을.... 4코스의 마지막 마을이자 이번 여행의 종착지인 동강이었다. 작심하고 걷기론 가장 많이 걸었던 여행. 내도록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지냈던 여행 그 여행이 끝난 것이었다. 첫날부터 여기까지 걸어왔던 길들이 머리속에서 꼭 축지법 쓰듯이 지나갔다. 그 길속에서 난 잊지못할 풍경과 함께 따뜻한 치유라는 선물을 같이 받았던 것은 아닐까? 또한  그동안 나도 모르게 내 몸속에 또아리 튼 탐욕을 조금이라도 비우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다시금 찾을 이곳이 벌써부터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