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개심사(開心寺) 생소한 절이다. 마음을 열어주는 절?
수원에서 서산 이곳까지 2시간여 소요된 듯 하다. 가는 길에 스쳐가는 저수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떠오르는 곳과 유사한 곳인듯...
(나중에 확인한 걸로는 주왕산 국립공원내 연못이 배경이었지만)도착한 개심사 입구에는 몇몇 도토리묵과 산나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우선은 절을 둘러보기로 했다.
경내로 들어가는 길은 그야말로 호젓했다. “象王山開心寺“ 현판을 단 입구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ㅁ자 형태로 이뤄진 곳에 대웅전과
양 옆의 스님들이 묵는 곳 그리고 마당에는 6층 정도의 석탑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몇백년(중건기준)의 역사를 가진 곳이라고 한다.
스님들 묵는 곳의 대청마루에 잠시 앉아 본다. 햇볕이 따사롭다.
오른 편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스님들의 수도장 선방이 있었다.
선방을 끼고 옆으로 녹지 않은 눈길이 그대로 있다. 돌아 나오니 감로수(?)가 있다. 옹달샘과 같은 운치를 기대했지만 모터로
작동하게끔 되어 있었고 그마저도 수도가 얼어붙어 있어 맛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산사가 주는 맑음의 정기만 해도 충분하다.
돌아 나오는 길은 오른쪽으로 난 차도를 택했다. 이른 아침부터 길을 쓸었나 보다. 눈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는 길을 보면서 비질하던
그 손길들의 부지런함과 정성을 생각해 본다.
처음의 그곳으로 다시와 점 찍어뒀던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껍질깐 녹두를 믹서기에 갈아서 만든 노릇노릇한
녹두전과 누룽지 동동주를 내 놓았다. 한 모금하니 누룽지 맛이 느껴진다. 녹두전과 함께 감태도 맛 보라고 권해주신다.
처음 보는 것이다. 경상도에서는 ‘신기’라고 한단다.
꼭 김처럼 얇게 펴서 말린 것인데 맛이 김과는 또 달리 독특하다. 개심사하면 녹두전 그리고 동동주와 감태까지 함께 연상이 될 듯하다.
[해미읍성]
해미읍성이 주변에 있는 듯하여 잠시 들러 가기로 한다. 작년에 왔던 그 길과는 반대편에서 들어서게 된다. 1년전의 그 회화나무와 옥사, 동헌등 그 전경은 여전하다. 뒤쪽 소나무 숲길을 거쳐 성벽위 길로 한바퀴 휘 둘러 나온다.
[벌교]
벌교를 갈 요량이면 태백산맥관이 문을 닫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하지만 5시까지 2시간여에 맞추기는 아무래도 힘이 들었다. 내심 6시까지 개관을 한다면 가능하겠다는 바램을 가지고서 달린다. 도착하니 사위가 벌써 어둑어둑하다. 5시 45분. 동절기인지라 여름과 달리 5시까지 밖에 개관을 않고 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오른쪽 소화네와 현부자네를 담장바깥에서 둘러보며 태백산맥관 주위를 한 바퀴 둘러 나온다.
낮에 왔다면 태백산맥에서 전하는 인물들과 배경을 떠올리면서 이곳저곳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밤에는 그렇게 하기가 싶지 않다. 그저 이 곳 벌교가 주는 현장감만이 대신할 뿐. 그중에 놓치고 싶지 않은 곳 김범우의 집. 조정래 선생께서 어릴 적 자주 놀러온 친구집이었고 이곳을 김사용의 아들 김범우의 집으로 소설 태백산맥에서 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양 옆의 출입문을 두고 중앙에 대문을 배치하여 한 집임에도 꼭 골목길 옆집을 둔 것 같다. 대청마루낀 본채를 두고 아래채와 사랑채, 뒷채등이 정겹게 자리하고 있다. 벌써 시각은 7시를 넘어선 지라 그야말로 겨울 밤이다. 뒷 채를 돌아나오는 곁 마당에서 하늘을 치켜 올라보니 감나무 가지사이로 교교히 흐르는 달 빛과 겨울 밤 바람 그리고 당대의 대지주집의 쇠락한 기붕... 그 장면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벌교에서는 주먹자랑 하지말고, 여수에서는 돈자랑 하지말고, 광양에서는 벼슬자랑 하지말고, 순천에서는 인물자랑 하지말라.>
벌교가 자랑하는 또하나. 꼬막. 주변 식당들 또한 온통 꼬막메뉴 자랑으로 도배를 한 듯 하다. 꼬막 정식 1인분이면 꼬막 양념반찬, 꼬막 무침, 꼬막 전, 꼬막 탕등 다양하고도 양 넘치게 꼬막을 즐길 수 있다. 일년 사시사철 이렇게 많은 꼬막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하여 물어보니 주인장께서 논밭처럼 각 구역에서 자란 꼬막을 조달하고 있다고 한다. 꼬막의 종류는 “피꼬막, 새꼬막, 참꼬막”으로 나뉘고 벌교 식당에서는 내놓는 것은 새꼬막과 참꼬막이라는 것도 함께.
[지리산 청학동]
지리산 청학동과 하동 최참판 댁은 김해를 목표로 할 때는 청학동을 먼저 들러서 나오는 편이 유리하다. 즉, 하동이 남해고속도로와 더 가까이에 있어서 때론 이를 참고하여 경로를 잡는 것이 좋다. 작년에는 뜻하지 않게 악양에서 청학동 가는 길을 택하였었다. 밤이었고 또한 깊은 꼬불꼬불 비포장 산길이었기에 애를 먹었었다. 하여 이번에는 포장길을 택하여 간다.
이 맘때쯤의 삼성궁에는 인적도 없고 그저 바람만이 반겨줄 뿐이다. 지리산을 휘 감고 돌아나오는 바람인지라 예사롭지 않기에 얼굴에 와 닿는 느낌이 남다르다. 40여년전 뜻을 품은 한풀선사(?)가 삼성(환인,환웅,단군)을 기리기 위해 이 터를 잡고서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곳. 홍익문을 들어서면 곧 온갖 돌 탑과 돌담으로 길이 내내 이어진다. 마고성을 지나서 산등성이를 돌아서게 되면 삼성궁이 기다린다. 곧 징을 울리고 안내하시는 분이 마중을 나오고 나서야 들어서게 되는 삼성궁.
연신 ‘자리가 참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경치가 주는 맛, 고요함이 주는 맛과 함께 성스런 기운마저 함께 하는 곳이기에 그 느낌과 감회가 유달리 색다르다. ‘아~~~ 정말 좋다’라고만 내 뱉을 뿐. 나오는 마지막 길에는 삼성궁의 유래와 옛적 유물들을 전시하는 곳과 기념품을 이모저모로 파는 곳을 등뒤로 하고 길을 나서게 된다.
[토지 최참판댁]
‘토지’하면 떠오르는 두가지 큰 환영이 있다. 그것은 서희에 관한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박경리 선생의 ‘청계천’관련하여 개탄하는 모습이다.
“ 나에게 있어서 '토지'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서희'였다.
토지 그 자체가 '서희'라고 할 만큼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역사의 격동기, 한 집안의 파란만장한 부침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도
기개와 절개를 잃지 않는 강단있는 여인네 그러면서도 자애로운 어머니' 의 모습. (작년도 방문기 중) “
그리고 박경리 선생의 ‘청계천’관련해서 쓰신 <생명의 아픔>중 한 구절에서
“미력이나마 보태게 된 내 처지가 한탄스럽다.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 차라리 그냥 두었더라면 슬기로운 인물이 나타나서 청계천을 명실공히 복원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청계천, 몸에 맞지 않는 조경의 의상을 입고 한심스러워 할 청계천, 몇넌은 더 벌어먹고 살았을 텐데, 노점상인들이 안타깝다.”고 하신 바 있다.
애초에 청계천 복원을 꿈꾼 선생께서는 선조들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조경(造景)’으로 ‘놀이터’로 망쳤다고 개탄했다고 하신 것이
함께 겹쳐온다.
물레방아, 정한조네, 용이네, 최참판댁을 휘돌아 읍내장터로 해서 휘적휘적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평사리 들판 한가운데 위치한 소나무 두그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서희와 길상이의 모습같기도 하고, 소희와 정하섭(태백산맥의 인물과 토지의 인물과는 한 가족인듯 매번 그 경계가 허물어진다) 아니면 평생 애틋하게 장년사랑을 키운 용이와 월선 같기도 하고.
[봉하 마을]
2009년 5월 이후로 나에게 있어서는 떠올리기만 해도 이내 가슴이 먹먹해지는 곳. 올해 마지막날을 앞두고 또 다시 찾았다. 사랑하는 조카가 있는 곳을 지나 농공단지를 벗어나면 봉하 들판사이로 노란 건물과 함께 전체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을에 들어서니 평일임에도 방문객들은 여전하다. 작년과 달리 채울길 없는 빈 한쪽 가슴을 가지고 있겠지 싶다.
“꽃이 져도 그를 잊은 적이 없다(이광재)”는 추모시를 담은 플래카드 앞에 선다.
“... 나라를 사랑하는 남자
일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나이를 보았습니다.
또 하나의 모습
항상 경제적 어려움과 운명같은 외로움을 지고 있고
자존심은 강하지만 너무 솔직하고
여리고 눈물많은 고독한 남자도 보았습니다.
존경과 안쓰러움이 늘 함께 했었습니다. ... “
구절을 다 읽기도 전에 시야가 뿌옇게 가려진다. 이내 나도모르게 닭똥같은 눈물이 절로 흐르고. 정말 애통하다... 평생을 갈 듯하다.
생가복원은 모두 끝난 모양이다. 묘역으로 향하니 그곳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너무 초라해 보였지만 그분이 계신 곳이니 오히려 초라함이 검소함으로 친근함으로 이내 바뀐다.
위로 올려보니 부엉이, 사자바위가 보인다. 그곳을 올라간 이들은 마을과 저 멀리 벌판과 맞은 편 산자락을 내려다 보고 있고. 아~~~ 그 분만 계셨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지만 그분 없이 접하는 이 풍경은 너무 슬프기만 할 뿐이다.
묘역 전체 부지에 바닥돌(박석) 까는 데 있어서 후원을 받는 곳에
“영원한 내 마음속의 대통령,
님의 뜻 잊지 않겠습니다,
님을 무한 존경 사랑합니다,
깨어있는 시민 되겠습니다. “ 4개를 신청한다. 헛헛한 맘 달래 볼 겸.
나오는 길에 들른 봉하마을 테마식당 그리고 소고기 국밥.
꾸역꾸역 한 숟갈씩 떠 넘기기야 했지만 욕지기와 함께 욱하게 되는 그건, 목줄기를 뜨겁게 달구며 내려가는 국물 때문인지 아니면 그곳 벽 이곳저곳에 걸려있는 사진속의 그분이 전하는 가슴 저미는 그 무엇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