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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힘이 세다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누구나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꿈꾼다. 바닷가 수평선 너머 시원스레 트인 풍경을 가진 파란 지붕 하얀 마을 속의 집(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계속 남아있는 곳. 그리스 지중해변의 산토리니 섬의 이아마을). 깨끗한 호수, 강을 끼고 바람 트여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게 보내기에 좋은 집. 산 중턱 깊은 듯 하면서도 사람 왕래가 그리 뜸하지 않고, 햇볕을 잘 받으며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자리 잡은 그런 집(지리산 둘레길 고갯마루나 강원도 곰배령의 그 집들처럼).

 

 모두가 꾸는 집이라면 대개 그 범주에서 벗어 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물론 거기에다 나만의 서재를 가졌으면 하는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차에 표지가 딱 눈에 뜨여 선택한 책.

집을 짓고자 하는 국어 선생님과 건축가가 몇년간 메일을 통해 문답식의 형태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면서 완성해 온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주고 받은 그 내용들을 편지 읽들시 읽다 보면 참 많은 깨우침을 얻게 된다. 두 사람의 집에 대한 생각들이 통상 말하는 집에 대한 설계/건축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살것이며 또한 그 집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상의하면서 평소에 가지고 있던 오롯한 자기 기준/철학등을 함께 버무려 내니 얻는게 하나만이 아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바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면 과연 이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이지만, 이는 건축주가 말로서 표현 못하는 부분까지 짚어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건축가는 기꺼이 집 건축이라는 주제외의 교감에도 적극적이다. 그 중간에 드러난 한 토막.

 

"... 도올 선생이 새만금 시위에 나선 일에 대해 이 선생님이 더 큰 절망을 만드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제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물었지요. 저는 혹시 이 선생님이 도올 선생의 관점에 반대하는가 했지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개인의 헌신적 투쟁이 좌절되는 체험이 거듭되는 일이 좋지 않다'고 했지요. 지율 스님을 예로 드련서 '누군가 애쓰는 일이 습관이 되는 사회는 무섭다'고 했지요. 영화 <왕의 남자>에서 '인생 한번 즐기고 갖'고 마지막에 광대가 한 말이 아주 슬펐다며 약자를 일으켜 세우지 못한 시대를 아파하셨지요."

 두 사람은 이 말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이해했으리라. (지음지교(知音之交)를 떠올릴 정도로 두 사람은 뭔가가 통했을 것이다.)

 

 집을 짓고 싶다는 그에게 건축가인 이일훈 선생은 어떻게 살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놓치고 있는 것이기도 한 그런 질문. 책 내용의 핵심 화두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고 싶느냐를 먼저 정하고(사람마다 각양각색이리라) 거기에 맞춰 집을 짓는 다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또한 집이란 것이 장소와 공간을 고려해야 한다는 가름침은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잊혀지지 않는다. 방이 마냥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것, 거실과 주방의 구성/배치 또한 그집의 생활방식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고 등. 일방의 주장이 아닌 서로가 가진 관점을 주고 받으면서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부러울 정도로 오래 지속하고 끝내는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다.

 

 건축가는 또 말한다.

"...시장에서 소비자는 사실 공급자가 만들어낸 '왕'이라는 허구적 지형에 세워진 '봉'이다. '허구'가 되지 않으려면 소비자 스스로 '허구적 지형'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삶의 방식을 함께 상의하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축은 한낱 '덩어리'일 뿐이다. " 

 하기사 건축뿐이겠는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경제 행위 대상 모두에 해당이 될 것이다. '허구'임을 인식하고 그 '지형'을 선택하지 말거나 최소한 '지형'을 피하는(근원적인 측면에서는 '지형'을 재 구성해야) 노력들을 우선 하라는 말로 받아 들인다.

 

 그가 '잔서 완석루(殘書 頑石樓):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란 이 집을 지으면서 제시한 건축가의 생각을 짚어보면

 

 1. " 약간 궁핍하면 인간의 지혜가 활발해집니다. 땅이 못 생긴 곳에 집을 지으면 기기묘묘한 집이

    나오니다. 땅이 좁은 난곡 달동네를 보면 물자를 아끼는 곳에서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집에서 동선을 단축하려는 경향은 잘못이에요. 10미터짜리 집에서 단축해서 몇 뼘이나 줄겠어요.

    동선을 늘려 사는게 낫습니다.

 

 3. 생태/친환경은 비쌉니다. 쌀 거라 짐자가면 안 돼요. 비싼 줄 알면서 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생태/친환경을 건축에서 이룰 수 있습니다. 비싸지 않은 재료로 싸고 거칠고 당당하게

    갑시다.

 

 4. 사람들이 안 보던 공간을 만들어 주려해요. 사람들이 오면 아 이런 데도 있구나. 바깥인데

    아늑하구나 하는 공간을요.

 

 5. 조각가가 집을 조각처럼 지었다는 이야기는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모양이 좋아야겠지만 그보다 그 공간이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에 알맞은지를 살펴야 합니다.

 

 6. 통풍과 방음에 상충되는 점이 있어요. 잘 쉬려고 통풍 위주로 집을 만들면 너무 밝아져서 힘듭니다.

    

 7. 집은 삶의 그릇입니다. 물질과 정신이 종합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8. 현대 거축은 옛건축의 지혜를 발굴하고 계승할 의무가 있습니다. 내부 공간이 어떻게 외부 공간과

    관계 맺는지가 한국 전통 건축의 핵심입니다. 마당-회랑-마루-방입니다."

 

 또 김중업 선생의 말씀을 언급한 내용은 꼭 새겨들어 둬야 할 듯. " 집이란 '어드메 한 구석 기둥을 부여잡고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집'이고 '집다운 집'이다" . 가족 구성원의 독립성을 보장하며서도 어울리기 수월한 공간 구성 그리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그런 집. 이 책의 건축주는 은밀한 공간을 곳곳에 배치한다. 책의 길, 서재, 안마당, 옥상정원, 툇마루 등등.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니 그러한 공간 설계가 나오는 것이리라. 평소 생각을 늘 열심히 하고 숙성을 미리미리 해 둘 일이다.

 

 집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끔 만들어 주는 책이다. 건축에 대한 생각도 바뀔 듯 하고. 집을 꾸미면서 둘레 나무로 벽을 대신하며 접하는 나무/꽃 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기쁨, 이웃과의 관계, 바람에 대한 생각, 구성원의 공간 배려, 사람들과의 모임등을 언급하며 비쳐지는 두 사람의 인생 가치관, 삶의 지향점 등을 보면 배울게 참 많아 (건강한 자극이라는 덤) 또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