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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힘이 세다

정의란 무엇인가


"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일 수 있고(자유 지상주의의 견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 가언적 선택일 수도 있다(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견해).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이중에서 필자는 마지막 방식을 좋아한다고 결론 짓는다.

 그 이유로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 만으로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며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하기 때문으로 그렇게 주창한다. 또한 좋은 삶을 토론하는 과정에서는 논란이 불가피하며 이러한 과정속에서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들게 됨을 말하고 있다. 즉,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한 인물은 1968년 로버트 케네디였다. 그에게 정의는 단순히 국민 총생산의 규모와 분배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더 높은 도덕적 목적과 관련이 있었다. 그의 1968년 캔자스 대학 연설에서 "물질적 빈곤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한들, 더 어려운 일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 만족의 결핍에 맞서는 일입니다." 미국인들은 단순한 물질 축적에 탐닉해 있음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또 그의 연설에서 보면, "... 우리 국민 총생산은 한 해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광고, 시체 치우는 구급차, 교도소, 네이팜탄등도 포함됩니다. ... 그러나 국민 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 총생산에는 우리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개 토론에 나타나는 지성, 공무원의 청렴성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도, 우리 지혜나 배움도, 국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 그대로 던져도 될 그런 내용일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은 뒷전인 채 오로지 물질적인 부의 축적에만 온통 열정을 쏟을 뿐, 그러한 물질이 어떻게 공동선에 기여할 것이며, 또한 소외되고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곳과 사람들에게는 조그만 관심도 한가한 소리로 치부하기 일쑤가 아닌지 돌아 볼 일이다.

 책에서는 수시로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벤담, 밀, 롤스와 같은 오랜 역사속에서 우리 삶의 방향에 대해서 깊이 성찰한 철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 만큼의 정립된 자기만의 주의/주장까지는 바랄 수 없겠지만 최소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단순한 찬반이 아니라 구체적인 근거와 내가 주장하는 바가 과연 옳은지 등에 대해서 다양한 문제에 대입하여 보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함을 일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