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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힘이 세다

엄마를 부탁해 (Please look after mom)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 째다"

지하철 서울역, 토요일 오후 둘째네 가던 길에 아버지의 손을 놓친 어머니가 길을 잃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개가 된다.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엄마의 존재를 때늦게 강조하듯이 어머니의 관점으로 딸, 아들은 모두가 '너'로 인칭이 정리가 된다.(즉, 화자가 어머니이기도 하고 또는 제 3자이기도 하다. )

 

 너는 이 집의 셋째였다. 어머니를 잃어버리는 그 날도 너는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북데이를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엄마를 잃고 나서야 회상을 하게 되는 '너'가 가진 기억 속의 엄마는 늘 부엌에서 일을 하거나, 생활을 위해 누에를 치고 누룩을 빚고 두부 만들 뿐만 아니라 쉴 새없이 재봉질, 뜨개질 밭일을 하고 있었다. '너'는 그런 엄마를 보고 속도 모르게 '엄마는 부엌이 좋아?'라고 묻기도 했고. 엄마 혼자 앓고 있던 두통도 몇번의 짜증섞인 목소리로 권유했건만 병원가기를 엄마가 내내 미루자 끝내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를 못했고. 큰 딸이었기에 어쩌면 엄마와 친구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얼마든지 엄마를 이해하고 또 잘 알 수 있는 위치였지만 그렇게 하지를 못했지.

 

 큰 아들인 형철은 누구보다 엄마의 기대를 받은 아이였다. 검사를 꿈꾼 것도 엄마의 바램을 의식했기 때문이었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해 늘 엄마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 그 또한 생활하는 가장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못하기도 했겠지만, 여하튼 엄마를 잊고 지내기가 흔하였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엄마를 잃고 난 지금. 검사의 꿈을 접고 상경하고 난 뒤 살 던 곳곳마다 전단지를 뿌려가면서 엄마를 찾아 나서지만, 오히려 예전 살던 동네 동네마다 남아있는 엄마의 기억들이 다시금 살아날 뿐 끝내 엄마는 찾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아내가 아닌 형철 엄마로 인식을 하던 남편이자 아버지. 때늦게 '당신은 이제야 아내가 장에 탈이 나 며칠씩 입에 곡기를 끊을 때조차 따뜻한 물 한 대접 아내 앞에 가져다 줘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북 치는 데 빠져 팔도를 떠돌아다니다가 가끔 오면 아내는 아이들을 낳아 놓았다. 형수를 그렇게도 따르던 삼촌인 균을 학교에도 보내지를 않았고 결국에는 살구나무 벤 자리에서 거품물고 죽게 만들었다. 아마 균의 일이 아내의 치명적인 두통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짐작한다. 딸과의 통화에서 '말이란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라고

뒤늦게 아내의 빈자리를 실감하며 지나온 날들 살갑게 대해주지 못함을 후회한다.

 

 아이 셋을 가진 넷째 엄밀히는 다섯번째 딸. 엄마가 넷째를 낳으면서 앞서 낳았던 아이를 사산했기 때문이다. 삼년의 외국생활을 하고 돌아와 국내에 둥지를 터고서도 아이 셋에 약국 운영하랴 늘상 바쁜 모습을 보고 안스럽게 생각했다. 자궁근종 수술 받으러 가면서도 전날까지 아이들 밥 챙겨주고 냉장고 안에 병원에 있는 기간동안 먹을 것 차곡차곡 쟁여두고... 속옷도 헤질 만큼 헤져서 무늬가 무엇인지도 모를 상태로 입고 있는 딸아이. 배울만큼 배우고 남이 부러워 할 만큼의 능력을 가진 자기 딸이 왜 그리 꼬질꼬질하게 살아가는지 엄마는 보고싶지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네가 셋째아이를 낳아 안고 돌아왔을 때 엄마가 그런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네가 놀라서 엄마!하고 빤히 보았던 그날. 늘 마음에 걸려 있었을 게다. 오히려 너는 엄마에겐 항상 기쁨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곰소의 평생 인생 동무였던 그 사람과의 인연. 그 사람 또한 나가 없어지고 난 뒤에 나를 찾아서 이곳저곳 수소문하면서 찾아 헤매 다녔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 그랬다. 엄마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엄마 또한 가슴에 두고 있는 수많은 사연들을 함께 나눌 동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걸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엄마 또한 고민이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엄마를 잃어 버린 지 구개월 째다"로 에필로그에서 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탈리아 성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상앞에서 내 뱉는 회한의 한마디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