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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힘이 세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회사 후배가 건네준 책. 그저 그런 화보집에 개인소감 느낌 등이겠거니 하고 구석에

한동안 쳐박아 두었다가 펼쳐든 순간 한장한장 빠져들었다. 그가 찍은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과 함께 그가 걸어온 그 길, 또한 그 속에서 그가 가졌던 생각들을 접하면서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애잔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도 이

풍광을 담기 위한 그의 20년의 그 여정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 죽음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라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실존주의적 신념. 그리고 그 신념에 따른 그의 길은 세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길은 가난한 사진 작가의 길, 둘째는 고독한 인간의 길이며 셋째는 투병의 길이다.

그는 극한의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늘 참 자유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사진에의 몰입과 창작 욕구가 그를 떠돌이처럼 홀로 살게 했다. - 안 성수

 

 서울을 떠나 홀로 제주에서 지낸 20여년 그는 2000년 초, 루게릭병이라는 희귀병을 앓게 된다.

(루게릭병은 스티븐 호킹박사가 가졌던 희귀병으로 온몸의 근육이 녹아내려 마침내는 앙상한

뼈만 남게 되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백방으로 몇년간 병을 치유하기 위해 애를 써 보지만

결국에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오로지 그만의 또다른 몰입을 찾게 된다.

 

 더이상 셔터를 누를 힘도 없었기에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그가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보관할 수 있는 갤러리를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몰입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2002년 여름 공사를

시작해서 이듬해 완성을 하고도 넓지 않은 학교 운동장을 제주를 상징하는 것들로 채워 작은 제주처럼

만들고자 하였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무언가에 몰입하지 못하는 하루는 슬펐기 때문이다.

 

 남들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몰입하자고 다짐하던 그.

작가 김영갑은 사람이면서도 자연의 신령한 정령을 먹고살며, 자연에게 말을 걸고 자연이

들려주는 신비한 음성을 사진에 담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 평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책을 덮자 마자 그가 마지막 혼을 쏟아부은 '두모악(한라산의 옛 이름)' 갤러리를

직접 봐야겠다 생각하고 찾아 갔었다. 중산간에 위치하여 산골이겠거니 했지만 조그만

읍내 초등학교(폐교)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현장에 직접 가 보니 그가 그토록

꿈꿔왔던 제주 그리고 제주사람들이 품고 있다는 이어도가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인생이란 어쩌면 짧은 여행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 짧은 여행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내고 지금은 다른 머나먼 여정에 나섰을 것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