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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힘이 세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제목이 도발적이다. 우선 기독교인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그는 정의하고 들어간다. 첫째는 교리 차원의 것 즉, 하나님과 영생을 꼭 믿어야 하고 둘째는 크라이스트(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교인들도 신과 영생을 믿고 있지만 기독교인이라고 하지 않는 것 처럼, 기독교인이라면 최소한 예수가 신은 아니라 하더라도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정도는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 영국의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사회 사상가로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 꼽힌다. 현실 사회에 대한 진솔한 관심과 스스로가 자유로운 무정부주의, 좌파, 회의적 무신론적 기질의 성향을 가졌고, 1차 세계 대전 때는 평화주의자로,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핵 무장 반대자로 1950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1979년 사망할 때까지 문필가, 철학자,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그는 몇가지를 다뤄서 이야기 한다.
(예수에 대한 믿음도 몇가
지를 들었지만 생략)

제 1원인론(이 세상 만물에는 모두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의 사슬을 따라 점점 깊이 들어가다 보면 최초의 원인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제일 마지막의 원인에 하나님이란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의 허구를 그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서전'에서 "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누가 날 만들었는가?'라는 물음에는 해답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즉시 '누가 하나님을 만들었는가?'라는 보다 깊은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와 같은 구절속에서 제 1원인론의 오류를 보게 된다. 즉,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게도 원인이 있어야 할 것이고, 어떤 것이 원인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세상도 하나님처럼 원인 없이도 존재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그는 '세상은 시초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 우리 상상력의 빈곤과 다름 아니라고 지적한다.

 

자연법칙론에서는 자연법칙들의 존재는 결국 법칙 부여자를 함축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존재가 있다고 가정하는 순간 들게 되는 의문 '하나님은 왜 그러한 자연 법칙들만 만들고 다른 법칙(가령 인간 행동의 법칙등)들은 만들지 않았는가? 만약에 이것이 하나님 자신의 기분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일 뿐 다른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결국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뜻이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 법칙의 일관성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라며 반박한다.

 

또한 목적론적인 측면에서도 온갖 결함들을 지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세계를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수백만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최선의 것이라고 믿을 것이냐고 그는 묻는다.

 

정말로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을 믿도록 만드는 것은 지적 이론 따위가 아니라 대부분 어릴 때부터 그래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며 바로 그것이 주된 이유라고 말한다. 그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이유가 안전에 대한 갈망 즉, 나를 돌봐 줄 큰 형님이 계시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한 갈망이라고 그는 본다.

 

세상을 둘러보면 인간의 정서적 발전, 형법의 개선, 전쟁의 감소, 유색 인종에 대한 처우 개선, 노예 제도의 완화를 포함해 이 세계에서 단 한 걸음이라도 도덕적 발전이 이뤄질 때마다 세계적으로 조직화된 교회 세력의 끈덕지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던 경우는 한번도 없었고 교회들로 조직화된 기독교는 이 세계의 도덕적 발전에 가장 큰 적이 되어 왔으며 지금 현재도 그러하다고 그는 말한다.

 

종교의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그는 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가상의 후원을 찾아 두리번 거리지 말고, 하늘에 있는 후원자를 만들어내지 말고, 여기 땅에서 우리 자신의 힘에 의지해, 이 세상을, 지난날 오랜 세월 교회가 만들어온 그런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기 적합한 곳으로 만들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할 일을 전한다. " 세상의 선한 구석, 악한 구석, 아름다운 것들과 추한 것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되 두려워하지는 말자. 세상에서 오는 공포감에 비굴하게 굴복하고 말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 세상을 정복하자. 신에 대한 모든 관념은 동양의 고대적 전제주의에서 나왔다. 자유인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인 것이다. 교회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며 끔찍한 죄인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 저럴 수 있을까 경멸감마저 든다. 우리는 굳건히 서서 이 세계를 진솔하게 직시해야 한다.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지식과 온정과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 혹은 오래전에 무식한 사람들이 뱉어 놓은 말들로 자유로운 지성에 족쇄를 채우는 짓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두려움 없는 직시와 자유로운 지성이 요구된다. 죽어버린 과거만 돌아보고 있을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의 지성이 창조할 미래가 죽은 과거를 훨씬 능가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

 

그는 이후에도 '종교는 문명에 공헌 하였는가', '나는 이렇게 믿는다', '인간은 죽은 뒤에도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해 자기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한국내 기독교 특히 교회에 대한 논쟁중의 가장 많이 벌어지는 일들. 빛과 소금의 역할은 커녕 교회 그 자체가 부패하여 척결이 대상이라고 보는 측면에 대해서 항시 오는 대답은 일부가 그럴 뿐 그렇지 않은 교회가 많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지 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장로라는 자가 나라 전체에 대해 사기를 치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오른 이후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그 가운데 접하게 된 책이어서 우선은 동지적 감정을 느꼈지만 책의 모든 내용을 그대로 수긍하는 것과는 별개이다. 그가 말한 것중 일부는 동의하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생각/구절도 또한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종교는 철저하게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하위로 놓고 절대 신에 대해서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고, 합리성의 배격, 개개인의 자아/정체성/주체성을 튼튼히 제안/활동/참여를 꺼려함을 넘어 적극적으로 짓누르는 그런 교회/기독교라면 나 또한 기독교인이 아닌 삶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