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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힘이 세다

문재인의 운명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서울 대한문 앞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그때 (아마 그는 민정수석을 관두고 히말라야로 여행을 다니던 중, 탄핵 소식을 접하고 귀국하여 야인으로 있을 때였을 것이다.) 그는 홀로 대한문 앞에서 조용히 그 촛불의 물결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둠이 어느 정도 내려 앉은 시각이었지만 분명히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물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었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탄핵재판 중에 있었던 탄핵반대 촛불시위 현장에도 자주 갔다. 나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촛불시위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 (P 298)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이며 대통령을 곁에서 보좌하다 건강이 많이 상해 그렇게 마음의 때도 씻으며 앞으로 뭘 하며 살아갈 지를 생각하기 위한 여행길이었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라고. 그의 말을 빌자면 사실은 노 대통령이 나이는 여섯살, 고시는 5년이 위였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부산 선거대책 본부장을 맡아준 고마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한다.(P31).

그 말씀 덕분에 지금도 과분하게 노무현의 친구라는 호칭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뢰하며 서로가 존중하는 사이가 아닐까 한다. 그분이 가시고 난 이후지만 그 관계는 더욱 더 소중한 것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1. 만남

그가 밝힌 운명이다를 보면 이 세상에서의 두분의 인연이 끊긴 2009 5 23그날 아침’. 그는 그의 생애 가장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오죽하겠는가?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대통령과의 동행 그리고 운명처럼 다가온 상주 역할까지 그와 함께 걸어온 그 길 속에 맺어진 그 인연은 어디에 견줄 수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1978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 사무소>를 열면서 그의 변호사의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이 평생으로 이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선배처럼 친구처럼 열정과 원칙을 갖고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그는 계속 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부산 출마와 낙선을 거듭하던 시기를 거쳐 2002년의 감격의 맛볼 때까지.

 

2. 인생.

 그 또한 가난을 어릴 때 겪고서 자랐다. 그 가난을 그는 자기에게 준 선물이라고 했다.

 

 가능하면 혼자서 해결하는 것, 힘들게 보여도 일단 혼자 해결하려고 부딪혀 보는 것, 이런 자세가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다 “(P 119)

 

 그런 환경속에서 그는 대학 입학, 구속, 강제 징집등의 과정을 거쳐 사시 합격을 이뤄낸다.

 

3. 동행

 2002년 청와대로 동행하여 참여정부를 조각(組閣)하고 이후 탄핵의 시기까지 함께 하다,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다.

 

 트레킹을 고행하듯 했다. 그래도 히말라야의 경관이며, 산간마을의 아름다움이며, 밤하늘의 별이며, 맑은 공기며, 보상은 충분했다. (P 287) “ 탄핵대리인을 거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서 퇴임 때까지 함께 정말 많은 일들을 접하며 보내었다. 대연정, 과거사 정리작업, 또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한미 FTA, 남북 정상회담, 미국 쇠고기 수입문제까지. 그 시절 그는 치아를 10개쯤 뽑았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이었다. 농군 노무현으로 돌아온 한 일년 남짓한 시기 동안을 뒤돌아 보면 농군 노무현을 바라보며 소박한 시민으로 살아 가는 듯한 모습은 잠시였고 그해 겨울부터 비극의 서막은 시작되었다.

 

 대통령 기록물 반환건, 주변 인사들의 세무 조사 등을 거쳐 마침내 칼 끝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향한 그해 2009 4월 경 소환 조사 그리고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4. 운명.

 그가 밝힌 것 처럼 생애 가장 긴 하루였던 2009 5 23. 그는 이렇게 술회한다. “그날만큼 내가 마지막 비서질장을 했던 게 후회된 적이 없다. 시신확인에서부터 운명, 서거 발표, 그를 보내기 위한 회의주재까지, 나 혼자 있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 (P413) “.  가혹한 운명이다.

 

술을 한 잔 마시면 가끔씩 옛날을 추억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이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 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너무 많아서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와의 만남부터 오랜 동행, 그리고 이별은 내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P441) “ .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 . 그렇다. 그는 그의 동지이자 친구인 노무현이 남긴 숙제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또 다른 숙제를 주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는 일. 그 숙제를 지금 그는 하고 있다. 부디 12 19일 그 숙제가 잘 풀려 또 다른 희망이 샘솟는 그런 날들이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고대한다. 예전 대한문에서 보았던 물끄러미 사람들을 보며 서 있던 그 모습이 아니라 활짝 웃는 모습의 그도 또한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