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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힘이 세다

열하일기

 

 

 사실, 열하일기를 읽게 된 가장 큰 이유는 2백여년전 나와 동연배 시절 박지원 그가 중국 기행을 하면서 어떤 내용을 담고 싶었고 또 어떤 형태로 그 내용을 기록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중고교 시절, 대부분이 그러하듯 시험문제용으로만 알고 있던 열하일기와 박지원...  20여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그 부채감을 조금이나마 떨어내게 되었다.

 

박지원 : 조선후기의 저명한 문학가이고 실학파 학자로,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44세에(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 축하 사절단으로 중국을 다녀오며 역작인 '열하일기'를 집필하였다.

  

 “매양 말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채 졸아가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풀어냈다. 무려 수십만 마디의 말이 가슴속에 문자로 쓰지 못하는 글자를 쓰고, 허공에는 소리가 없는 문장을 썻으니, 매일 여러 권이나 되었다." 와 같은 그의 말에서 알수 있는 것 처럼 열하일기는 그의 치열한 기록열정,세계(중국)에 대한 열린 태도, 조선에 대한 사랑, 인물/풍경/역사/문화등에 대한 그의 지적호기심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작이다. 당시(조선시대) 중국 기행문 500여편중 백미로 꼽을 만큼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할 것이다.

 

열하일기를 번역한 김혈조씨가 언급한 다섯가지를 염두에 두고서 열하일기를 접한다면 보다 새롭게 다가옴과 아울러 현재의 우리를 대입하여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첫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의 제공이다. "

 당시나 지금이나 늘 이러한 지적 호기심이 충만해야 함은 당연할 것이다. 개인이나 그 사회의 기운(분위기)이나 모두가 해당될 것이다. 물론 당시는 지금보다 더 이러한 정보의 제공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 사회 풍자, 비판, 문체등은 당시 보수적 성향의 유림들로서는 마뜩치 않았기에 부정적이었다지만 근대에 이르기 까지 사실상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왔다는 점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쉽게 되지 않는다.   

 

" 둘째, 선진 문화 문물을 본받아야 한다는 북학의 내용이다. "
북벌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청나라가 조선의 낙후한 문화나 만성적 빈곤을 타개할 수 있는 이용후생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 문화 문물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고금이래로 그 사회를 퇴보하게 만드는 고질병.

 

" 셋째, 천하대세를 어떻게 전망했는가? 하는 주제이다." 

당시 세계중심부인 중국 천하와 그 주변부인 조선의 관계는 정확한 정세판단이

긴요했을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항시 외부 세계의 변화흐름에 대한 촉수를 갖추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가꿔가야 했다. 열하일기는 그러한 촉수중의 하나일 것이로되 이에 대한 당시의 부정적인 평가/대우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4대 열강 속에서의 한반도를 본다면, 열강들의 역학관계와 변화흐름 등을 빠르게 읽어내고 그 속에서 균형적인 시각으로 우리를 위치하고 발전과 평화를 관리해 나가는 것. 이러한 시사점을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재삼 확인하게 된다.

 

" 넷째,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간 유형에 대한 묘사와 인물의 창조이다. "

 역사를 움직여 나가는 활동 주체는 바로 인간이다. 그가 묘사한 인물들 속에서 인간들이 무엇을 사고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가는 역사의 흐름을 전망하려는 주제와 맞 닿아 있다는 것이다.

 

" 다섯째, 선비 곧 지식인의 역할과 처신에 관한 문제이다. "

조선의 지독한 가난은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이 전적으로 선비가 제 역할을 못한 데에 있다. 역사적 전환기에 처한 선비의 출처대절(出處大節: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지키는 절개)를 말하는 것이다. 곡학아세로 연명할 것이냐 아니면 세상을 피하여 자존을 지킬 것인가 혹은 현실을 거부하고 고쳐 나갈 것인가와 같은 지적은 인간으로서 자기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역자는 말한다. 지금은 어떠한가 소위 Opinion Leader나 지식인들을 보면 똑같은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 것 아닌가?

   

1권

압록강을 건너 요양에 이르기까지를 기록한 '도강록(渡江錄)'에서 심양의 이모저모를 담은 '성경잡지(盛京雜識),말을 타고 가듯 빠르게 쓴 수필 '일신수필(馹迅隨筆)',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이야기인 '관내정사(關內程史)' 그리고

북경에서 열하까지의 여정 체험을 담은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으로 이뤄져 있다.

 

2권

열하의 숙소인 태학관에 머물며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열하에서 만난 중국 친구들 '경개록(傾蓋錄)', 라마교에 대한 문답 '황교문답(黃敎問答)', 반선의 내력 '반선시말(班禪始末)', 반선을 만나다 '찰십륜포(札十倫布)', 사행과 관련된 문건들 '행재잡록(行在雜錄)', 천하의 대세를 살피다 '심세편(審勢編)', 양고기 맛을 잊게 한 음악 이야기 '망양록(忘羊錄)', 곡정과 나눈 필담 '곡정필담(鵠汀筆談)', 피서산장에서의 기행문들 '산장잡기(山莊雜記)' 와 같은 이야기들이 그의 호기심만큼이나 다양하게 전개된다.

 

3권

요술놀이 이야기 '환희기(幻戲記)'를 시작으로 하여 피서산젱에서 쓴 시화 '피서록(피서록)', 장성 밖에서 들은 신기한 이야기 '구외이문(口外異聞)', 북경의 이곳저곳 '황도기략(黃圖紀略)', 공자 사당을 참배하고 '알성퇴술(謁聖退述)', 적바림 모음 '앙엽기(盎葉記)', 동란재에서 쓰다 '동란섭필(銅蘭涉筆)', 의약 처방기록 '금료소초(金蓼小抄)'로 맺고 있다.

 

환희기(마술 연희)에서 언급한 내용은 덤으로 우리가 보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과연 내가 본 것이 정말로 진실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또 어떠한가? 내가 보고 알고 있다고 여기면서 내린 수많은 결정들은 정말 믿을 수 있는 것들이었나. 꼼꼼하거나 정확하게 보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나 등.

 

" 눈을 달고 있으면서도 시비를 분변하지 못하고, 참과 거짓을 살피지 못한다면 눈이 없다고 해도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항시 요술쟁이에게 현혹되는 것을 보면, 이는 눈이 함부로 허망하게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보려고 하는 것이 도리어 탈이 된 것입니다. "

 

" 아무리 요술을 잘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장님을 현혹시킬 수 없으니, 눈이라는게 과연 고정 불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