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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081223(화) : 살아있는 역사 '광주 5.18'


 [이동경로]
    → 출발(10:00) → 목포 유달산(10:20) → 新 전남도청(무안) 12:00 → 1번 고속도로
    → 동광산 IC(13:40) → 광주시청(14:00) → 舊전남도청(문화전당)(14:50) → 경열사
    → 5.18 국립묘지(16:15) → 담양 메타쉐콰이어(17:10) → 담양 죽녹원(18:00)
    → 담양 IC → 12번 고속도로 → 동광주 IC (18:08) → 29번 도로 → 보성 도착(19:30)


  작년에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 이후 5.18
전남대생의 가두시위시작과 함께 시작된 공수부대의 진압작전명이었던 [화려한 휴가]를 제목으로 한 영화. 영화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네 민초들의 삶 그대로였지요. 운전사, 간호사, 고등학생 그리고 선생님, 신부님등... 이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속속들이 생각은 나지 않지만, 아직도 '영화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온통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던 기억은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막을 내린후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음은 당연합니다. 미안함, 죄스러움, 부끄러움 그리고 알지 못할 분노등이 뒤엉켜서 그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광주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86년도 선배들과 MT 갔을 때 였던 것 같습니다. 선배가 그 때 그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만 처음에는 사실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누구든 그랬을 것입니다. 날조된 허무 맹랑한 불순한 얘기로 치부되던 시절이기도 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럼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까요? 물론 달라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전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학살을 행한 자들에 대한 역사의 단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외에 무엇보다 광주가 우리에게 준 책무(자주,독립,민주주의의 완성과 지역통합, 인권존중 사회의 구현등)에 대해서 '살아남은자'들이 얼마나 충실히 이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과 국립묘지 승격등을 보면 이룬 것도 있습니다만 계속 저는 본질적인 측면에서의 부족한 면이 더 떠오르릅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여전히 끝내지 않은 숙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봅니다.

국립 5.18 민주 묘지...
당시 싸우다 희생되신 분들과 부상 및 구속된 분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이곳을 찾았습니다.
' 광주 광역시 북구 운정동 산 34번지(민주로 136) '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역사적인 현장에
들어서는 지라 조심스레 옷깃을 한 번 더 여미게 됩니다.



곧이어 정문인 '민주의 문'이 나타납니다. 당시 희생된 분들이 잠든 이분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민주' 그 민주주의가 지금 10년 20년 후퇴되고 있는지라 더욱더 맘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뒷편 민주광장에서는 녹색광장을 꾸미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더군요.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찾을 수 있도록 잘 가꿔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내년 4월이면 완공이 된다고 하니 좀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합니다.

 5.18 민중항쟁에 참여했다가 희생된 분들의 영정을 모신곳 '유영봉안소'입니다. 전통고분인 고인돌의 형태를 응용하여 모셔뒀더군요. 참배하러 오신 분들의 광양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대화를 잠시 들어보니 여기 있는 분중에는 이웃하신 분의 조카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여북하겠습니까? 당시 광주분들 그리고 전라지역분들 모두가 다 여기 계신 희생자들과 이러저러한 혈연의 끈이 다 연결이 될 만큼 희생이 컸으니 말입니다.

 국립묘지의 가장 중앙에 위치한 '5.18 민중항쟁 추모탑'입니다. 두개의 대칭되는 사각기둥 모습인 탑신의 골격은 우리나라 전통 석조물인 당간지주(幢竿支柱)형태를 형상화한 것으로 추모의 염원을 상징한답니다. 특히 탑 중앙을 관통하는 문인 '불이의 문'은 오월 영령과 우리들이 만나는 일치의 문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쪼록 여기 잠들어 계신분들의
거룩한 정신이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가슴속에 널리 퍼지기를 바랍니다.  

 28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미완의 과제에 대해서 여기 잠들어 계신 영령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것을 잊지 말라'  고 말입니다. 묘역 윗편에 5.18 항쟁의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선생'의 묘도 있었습니다. 도청 함락후 12년간 미국 망명생활동안도 광주의 아픔때문에 철저하게 금욕생활을 견지하셨다는 대꼬챙이 같이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선생께서 말씀하셨던 바와 같이 광주가 아픔의 기억만을 간직할 게 아니라 민주,인권,평화(보편적 가치)를 넘어 개혁과 진보(항쟁정신) 그리고 통합과 통일(대동정신)의 계승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그것이 여기 계신 분들이 진정 바라는 바가 아닐까 합니다.

 나오는 길에 눈에 뜨인 역사의 문(체험공간)에 있는 '어린이 체험학습관'. 아픈 역사이지만 제대로 그 역사를 배우고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봅니다. 작금의 뉴라이트가 행하는 역사(왜곡)특강도 다음 세대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알기에 그리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 학습관이 5.18에 대해 아이들이 올바른 인식을 갖고서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커 나갈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리라 봅니다.


해마다 5월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망월동을 다녀가지만 정작 죽은 그들이 무엇을 외치고 무엇과 그렇게 처절하게 맞서 싸웠는가 기억하고 반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5월 광주는 1980년대 어느 시점, 과거의 기억에 멈춰있어서는 안됩니다. 1980년 민주화의 물꼬를 틋듯이 진보와 통일의 물꼬로 이어져서 그 꽃을 피우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고 합니다. 
지금에도 그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촛불'부터 해서 4.19 혁명, 제주 4.3 항쟁, 3.1운동, 갑오농민 전쟁등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불의와 폭압에 대한 수 많은 저항이 있었으며 이 와중에 많은 민초들의 피를 요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희생들을 바탕으로 해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겠지요. 비록 불완전한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 수준의 세상이지만 말입니다. 그 불완전한 민주주의 마저 20년뒤로 후퇴하고 있는 요즈음,

 "광주는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민중가요-임을위한행진곡.mp3 (2781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