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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힘이 세다

고민하는 힘


'고민하는 힘'

  

 

 

 '고민'이라는 키워드를 실마리로 해서 '나는 누구인가?',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믿는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왜 죽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늙어서 최강이 되라'와 같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닿뜨리게 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저자의 에세이이다.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청소년 시절에 누구나 한 번 쯤은 가져보는 질문거리에 대해서 중년의 나이를 지나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는 것을 두고서 '늦깍이(늦되는 사람)'라고 한 점에 대해 공감이 간다. 이 책은 또한 저자의 청춘을 수 놓은 우뚝 솟은 존재인 일본의 대문호인 나쓰메 소세키(1867~1916)와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베버(1864~1920)를 들어 질문들에 대해서 풀어가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나는 누구인가?


 
저자의 경우는 더더욱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더욱 가졌었기에 이 질문에

더욱더 천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사이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실존적 물음에 더욱 끌리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자아'와 자주 혼동되는 타인의 기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을 밀어 붙으는 '자기중심주의'와의 구별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막스 베버를 사숙했던 칼 야스퍼스(1883~1969, 정신병리학자이며 철학자)는 "자기의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파멸한다"고 했다며 이는 자아라는 것이 타자와의 관계속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결론인 듯 하지만 고민의 결과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남다르게 다가온다.


 

2.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했던 것 처럼 돈과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들 또한 약간의 사치를 부렸다는 사실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리고 있다. "... 그렇다면 결국 나쓰메 소세키처럼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돈을 벌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돈을 사용하고, 그러면서도 돈 때문에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윤리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본의 논리 위를 걸어갈 수 밖에 없다. "  이 또한 저자가 밝힌 것 처럼 너무나 평범한 아니 어쩌면 당연한 맺음일지 모르겠다.


 

3.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터넷과 같은 매개체를 통해 지천으로 널려있는 정보를 단순 검색하여 알게되는 '지
식' 또는 '정보통'과 '지성'은 구분을 지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보(information)과 지성(intelligence)이 같지 않은 것 처럼. 우리가 취해야할 지성은 가치의 전도와 '전인격적인 지성'의 일부로 가름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전문적 분화체제속에서 이를 중화할 수 있도록 '자연의 변화 속에서 얻는 지' 즉, 중세 시대의 크래프트(Craft)적인 숙련, 또는 신체감각을 통한 지의 본래 모습까지 넓히자는 것이다.


 

4. 청춘은 아름다운가?


 저자의 글중에서 인용한다. "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원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
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말하면 원숙함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딱딱한 표현이지만 '표층적으로 원숙한 것'과 '청춘적으로 원숙한 것'이 그것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는 말할 것도 없이 후자입니다. "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청춘 여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어도 청춘의 향기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따라 정의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얼음 위를 지치듯 모든 일의 표면만 지친다면 결국 풍성한 것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며 그러하다면 그것은 청춘이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여러 단락중에 가장 주의해서 보게되는 절이다. 본문에서 "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
는다'는 말은 궁극적으로 그런 의미가 아닐 것입니다. 무엇인가 초월적 존재에 의지하는 타력본원(他力本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글을 보고서 관성적으로 지녔던 생각과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에서 역설적으로 그의 고민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 사람은 자유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 이 말은 모든 일들에 있어서(고민거리를 포함) 자아와 마주쳐야 하고, 그때마다 자기의 무지와 어리석음, 추함, 교활함, 연약함등을 발견하게 되는 부담을 피하기 위해 또 마음의 의지를 위해 종교가 필요해 진다고 해석하며 내뱉는 말이다. 이는 에리히 프롬(1900~1980)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밝힌 바와 같이 1920년대 이후 독일이 개인주의로부터 급속도로 극단적 파시즘으로 이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유를 동경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고 자유로부터 도망쳐 '절대적인 것'에 속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고민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부담과 책임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 자기와 끝없이 싸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은 새겨둘 일이라고 본다.


 

6.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일을 왜 하는가? 먹고살기위해서? 아니면 명예를 얻기위해서? 그도 아니면 타고난 숙
명이기 때문에? 이 물음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나오겠지만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일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즉 '자기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서' '타자로부터 배려를 원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은 타자로부터의 배려를 통해서 사회속에 있는 자기를 재확인할 수 있고, 자기는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얻는 다는 것이다.

 

 역시 일이라는 것은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것도 타인을 통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그런 시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저 연봉의 크기, 생활, 처우, 비젼등과 같은 것에서 찾을 일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내가 존재감을 확인하는 살아있음에 대한 당위의 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일이다.

 


7.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사랑이란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고 그것은 그때 그때 상대의 물음에 답하려는
의지라고 한다. 결국 사랑은 어떤 개인과 어떤 개인 사이에 전개되는 '끊임없는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에 한쪽이 행동을 취하고 상대가 거기에 응하려고 할 때 그 순간마다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며, 그런 의지가 있는 한 사랑은 계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변하되 그 본질은 상호작용의 작동이라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점은 올바른 지적이라 본다.

 


8. 왜 죽어서는 안될까?


 톨스토이의 "무한히 진화해 가는 문명속에서 인간의 죽음은 무의미하다. 죽음이 무의
미하기 때문에 삶 또한 무의미하다" 라는 말을 언급하며 죽음을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고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자기의 의미를 확신하게 되면 삶과 죽음이 모두 비슷한 무게를 가지게 되고 그렇게 된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여 고민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확신할 때까지 계속 고민하라는 조언도 곁들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껴 오고 있는 터라 저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비슷한 시각과 자기 의미 확신등에 대해서는 좀더 교감을 할 수가 있다. 조금씩 조금씩 늦되는 사람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9. 늙어서 최강이 되라.


 저자는 자기 인생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춘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두렵지
않음 마음이 조금씩 생기게 된다는 경험을 한 덕에 과거보다 더 대담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뭐든지 덤벼'하는 각오가 생기게 되니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것도 지금까지의 인생과는 달리 하고 싶다면서 자기의 생각을 밝힌다. 가장 먼저 배우를 하고, 영화를 만드는 꿈. 또한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일본 종단 여행을 하는 꿈. 이는 저자가 '진지하게 생각에 골몰한 끝에 뻔뻔해진다', '깊게 고미해서 꿰뚫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주된 메세지는 고민하라! 그리고 또 고민하라!  그 고민 끝에서 해답을 찾고 그 해답속에서 자기 의미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면, 인생을 살면서 맞이하게 되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일은 없을 이라는 것이다.